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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1.0 글 모음/Ver.2.4

2008년 6월 10일자 일기.

어제 썼어야 했는데, 진보신당 칼라TV를 시청하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그냥 자버렸다.
오늘자 밤에 쓰려다가 자우림 7집을 듣기 전에 음반샷을 올리고 싶어서 지금 후다닥 적을란다.


음..
어찌되었건 오랜만의 서울 구경이었다.
뭐, 2주 전쯤인가 동네 밖을 나갈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갈 때마다 어색하고 동시에 가장 재미없는 명동 거리를 다니었다.
날이 날인만큼 나는 후에 방향을 틀어 약 5시 쯔음 되어 시청 앞으로 갔던 것 같다.
사실 가기 전에는 그냥 분위기 캐치만 해보고 싶었다.
가고픈 마음은 굴뚝 같아 생중계를 보면서 후원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
말로만 주절거리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가장 비판받을 짓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그대로를 실천하고 있으니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더랬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돌아왔으니 그저 눈을 감는 수 밖에 라고 생각했더랬지만, 그래도 답답하고 외쳐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느니.

차라리 네트와 친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컴맹이었더라면.

그냥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마치 매트릭스와 같다고나 할까?
조중동과 보순 언론의 눈속임에 가려 그저 세상 잘 돌아가는구나, 저들이 불법 시위 하는 구나 라고 알고 있었더라면 오히려 속 시원하고 살 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리 답답해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부모님과 의견 마찰도 없었을테고.

하지만, 누군가 그러했듯이 과거의 if란 쓸떼없는 짓이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네트를 통해 생중계와 녹화와 녹음. 그리고 빛의 저장을 통해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바라보았고, 그럼 곧 진실은 진실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난 시청으로 향했다.
몇시에 어디서 모이는 것인지 몰랐으나 촛불 집회 자체가 늘 그랬기에 그닥 걱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시청으로 간 나는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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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질서수호.
FTA비준촉구
국민대회?

갸우뚱갸우뚱.
내가 아는 촛불집회의 구호는 저런 것들이 아닌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전에 있었던 보수단체 집회를 떠올렸지만, 설마 6월 10일이 무슨 날인데, 저럴까라는 생각으로 뭔가 오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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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하라 6.25 잊지말자 미군의 흘린피.

내 뒤의 사람들이 모두 그랬듯이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군의 흘린피?
허허..

덧붙이자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25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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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바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아고라 깃발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의 깃발들도 나 같이 생준비도 안해온 무식한 시민들을 위해 노래하고 구호 외치고 피켓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청계광장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역시 네트라는 것이 없으니 이리 답답할 수가 없다.
집에서 생중계나 아고라, 올블로그, 한겨레, 경향닷컴, 오마이뉴스 등에 접속해 실시간 정보를 확인할 때엔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막상 현장에 있으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슬슬 청계 광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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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니, 창조한국당도 와 있고..
(이제 와서 뭐하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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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가?
저 앞의 미국 성조기?

자존심 따위는 있지도 않는건가?
어떻게 저런 집회가 대한민국의 중심부에서 떳떳하게 치뤄지는 것인가.
게다가 떳떳하게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저 모습이란.
동시에 사진에서는 들리지 않지만, 청계광장에 가면서도 계속 들리는 듯한 저들의 괴성은 누구 말대로 괴로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밤새 기도회도 열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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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계광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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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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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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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

공공운수 노동자 총궐기대회??

대체 어디로 가야 촛불집회의 장소를 찾을 수 있는건가?
사실 사진엔 담지 않았지만, 이 뒤에는 무슨 이상한 여성 단체가 흑백 사진 쭉 걸어놓고 이상한 거리들을 하고 있었고..
이건 뭔지.
하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건 컨테이너 박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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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의 컨테이너 박스들을 보고 저 자리에서 10초 얼음땡했다.
내 눈이 이상한거라 믿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2층 구조의 컨테이너 박스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것을 보니, 광화문인 것도 분명했고, 세종문화회관도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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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서 본 컨테이너 박스들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태극기는 또 뭔가.
처음에는 혹시 시위대가 가서 걸어둔 건가?라고 기대했지만, 경찰 쪽에서 걸어둠이 확인되었고,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태극기는 내려왔다.
나중에 보니, 각 언론에는 태극기가 떼어진 채 보도되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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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박스들은 2층구조에 2단 구조였으며, 그 뒤에는 전경 버스가 제 2의 장벽을 갖추고 있었다.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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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버스를 이용해 장벽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저 버스는 생중계에서 보았던 낚서 가득한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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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5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민들은 상당수 모여있었다.
아고라와 안티이명박 깃발이 도착해 도로 점거를 조금씩 시작하고 있었고,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로 인해 도로는 신호가 바뀔 수록 사람들로 덮혀지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모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1분 1초가 다르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내가 촛불집회에 제대로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래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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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내 부숴진 W1의 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힘겹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을 촬영하기로 했고, 그래서 DSLR은 좀 아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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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촛불시위를 돌아다니며 건져올린 것들.

미친소 수입 저지!
공기업 민영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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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냉큼 물러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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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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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위 사진의 것을 붙이고 갔다.
다들 기념 촬영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많은 글들과 정보들을 보고 있는데, 이런 유머 때문에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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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고보니, 공공노조도 이 촛불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고, 이들은 이번 촛불시위의 큰 힘이 되었다.
공공노조의 집회가 끝나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서서히 광하문 사거리는 시위대로 점령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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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종로 방향에서 나타난 고려대학교 학생들.
사진에는 없지만, 이후 여기저기에서 대학생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사진 후 금방 성균관대 문과대도 뒤 따라서 나타났다.
이후 많은 대학교들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내 참 이렇게 창피한 적이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봤도 내 학교는 볼 수가 없다.
당췌 뭐하자는 거냐.
맨날 학교 내부에서 등록금 인상이니 법인화 문제이니 언급만 하지 세상일에는 대학생이라는 계층이면서 관심도 없다는 건가?
하물며 총학생회의 영향력이 약한 학교들도 이 자리에는 작지만 어쨌든 깃발을 들고 같은 목소리를 내었는데, 도무지 내 학교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건가?
7시 후에 집회가 정식 시작되고 나서도 청계광장부터 광화문 거리를 왔다 갔다 했는데, 깃발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집회 장소에서 들어보니, 광화문 사거리부터 숭례문까지 시위대가 이어졌다고 하니, 그 사이에 있었을거라 기대한다.
그저 한숨만 씹을 뿐이었다.

대학생들은 공공노조와 함께 도로에 앉아 촛불을 들었다.
그 뒤를 시민들이 이어 숭례문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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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고라 깃발을 든 단체들이 주력이 되어 사거리를 점령했다.
여전히 버스와 자동차, 오토바이 등이 다니고 있어 사고도 날 뻔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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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리를 하던 경찰들도 버스와 자동차들을 유턴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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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바라본 컨테이너 장벽.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
뭐, 누구나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황당함을 감추지 못 했을테고, 많은 생각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동시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묘하게 일치되어 셔터를 누르면서도 욱한 감정이 계속 밀쳐 올라왔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저 컨테이너 장벽에는 구리스라는 것을 발라두어서..
뭐, 나도 구리스가 뭔지는 모르겠고, 쉽게 말해 기름칠을 해두었더랬다.
시위대가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둠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때문에 시민들은 가져온 피켓이나 종이를 컨테이너 박스에 쉽게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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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집회는 시작되었고, 시위대는 도로와 인도에 모두 앉아 발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9시경에 자리를 뜨기 위해 앉지 않았고, 분위기 캐치를 더 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료로 주는 촛불을 찾아 들어 촛불을 들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소리를 질러댔다.
한번 질러보니, 내 참 이렇게 후련한 것이 없어 계속 따라 질러댔고, 진작에 나올걸 이라는 후회도 들고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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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는 약 9시경 끝이 나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광화문은 명박산성으로 막혀 있고, 또 시위대의 수가 너무 많아 양분하여 양 쪽으로 흩어졌다.
집회 장소에 있던 1.5톤 트럭 위에 스피커가 놓여 시위대의 앞을 이끌었고, 시위대의 마지막이 어디인가하면서 스트로폼 위에 있던 나는 그 끝을 볼 수도 찍을 수도 없어 그저 소리만 질러대다가 행진에 참여하여 잠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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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가기 전에는 분위기만 몸으로 느껴보고 8시, 9시에 돌아오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하철을 탄 것은 10시 30분 정도가 되서였다.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소리를 내어 보고 싶었고, 촛불을 조금 더 올려보고 싶었다.

돌아오면서는 다리가 쑤시더랬다.
명동 거리를 몇 시간이 왔다갔다 하고 나서 집회에 가서도 단 한번도 앉지 않았으니 그도 그럴만했다.

언론에서 뭐, 10만명이니 20만명이니라고 하는데, 뻥이다.
분명히 그 수는 아니고, 굳이 숫자를 대라면 집회 주체측에서 측정한 40만명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주체측에서도 이후에는 더 많은 수의 시민들이 동참했으나 그 수를 세지 못하고 있다고 했고, 지방의 도시에서도 집회가 열렸다고 하니, 그 수는 어마어마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휴대폰이 불통되었을 정도라니..

덧붙임)
촛불 광점으로 분석한 촛불 문화제 참석자 수
1백만 참석자 추산 공식!

시민들의 수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2002년 월드컵 때에 수많은 시민들이 광화문을 시작해서 시청을 넘어 빨간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그 수에 버금간다고 하면 뻥이지만, 어쨌든 그것과 비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편으로는 보수 언론들의 눈가림만 아니면 좀 더 나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네트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촛불시위가 얼마나 규모가 큰지 시민 의식이 얼마나 상승되었는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영화 배우 문소리와 내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가수 양희은도 나와 집회의 열을 올려주었으며, 도로 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광화문과 시청 사이를 움직이려면 꽤 인내심이 필요했다.

나는 무료로 받은 촛불을 들었더랬는데, 촛불 드는 요령을 모르는건지 세번이나 꺼져버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촛불이라는 것이 작지만, 어쨌든 불이기 때문에 위험한 건 사실이다.
뭐, 어쨌든, 종이컵 바닥이 더 뚫려버렸는지 촛농이 양 손에 떨어졌는데, 음..
의외로 안뜨겁더라.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가만 있으니 별로 뜨겁지 않아서 괜히 무서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난 촛농이 살에 닿으면 화상이라도 입는 줄 알았더랬다. (;;)


참 후련했다.
진작에 한번이라도 다녀올 걸 그랬다.
그래도 저 자리에 가서 한 목소리를 내고 왔고, 나도 행동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뿌듯하다.
사실 혼자 생각에 광우병이고 미국산 쇠고기고 그런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이렇게 대놓고 눈가리고 아웅이라면서 국민을 외면하는 정책들만 쏟아내는 현정부의 퇴각이 더 중요한 것이며, 딴나라당의 퇴각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탄핵이니 뭐니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생각이 잡히지 않았는데, 어쨌든 언젠가 그리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렇지.
돌아오는 길에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좀 생뚱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 한 명쯤 저기 나간다고 세상 바뀌는 것 하나 없다.
종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쯤에는 행진에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하고 있지만, 이내 조금만 지나가다보면 모두들 사라지고 없고, 인천에 돌아오는 길바닥에는 여전히 거지들도 있고, 부평 거리에는 고등학생들도 지나가고, 술집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그렇다.
버스도 여전히 굴러가고 택시 탈 사람들은 택시 타고, 집에 오면 부모님은 TV 보시면서 웃고 계실 뿐이고, 나래는 당연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며 집에는 막 도착한 음반이 도착해 있다.
고3들은 야자하고 있었을테고, 재수생들도 독서실에서 공부에 매진해 있을 것이고, 뭐 그럴거다.
나 하나쯤 빠진다고 100만명 촛불 시위에 99만 9999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 하나쯤 들어간다고 100만 1명이 되는 것도 아니다.
광우병이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재협상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근데, 세상은 바뀐다.
한명, 두명의 시민들은 저 녀석들이 경찰과 언론과 뉴라이트와 손을 잡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갈테고, 나 한명으로 인해 그 한명, 두명은 이내 세명, 네명으로 불어날 거라 생각한다.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 시위도 그러했던 것 아닌가?
한달이 넘어다도록 참가하고 있는 존경하는 시민들도 다 알고 있다.
한명 빠지고 들어간다고 세상이 확 바뀌는 것이 아니란 것을.
하지만, 언젠가 그리고 조금은 바뀌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간다.
그냥 그런거지무얼.

나로 인해 나래는 오빠가 왜 네트를 헤매이는 지 알게 되었고, 현 정부의 폐단을 알게 되었다.
조선일보로 사설 공부를 하는 나래가 단지 나로 인해서 조선일보의 사설을 보기 거북해 했다.
엄마도 나로 인해 하나둘 무슨 말인지 알아갔고, 조선일보에서 1년 무료 구독과 5만원을 준다는 유혹을 뿌리쳤다고 하셨더랬다.
친구 녀석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군대에서 KBS 따위나 보고 있는 녀석도 나로 인해 조금이지만,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다.
세상은 바뀐다.
비록 나란 녀석도 이 모냥 이 꼴이지만, 어쨌든 바뀌는 것은 바뀐다.
나로 인해 시위대의 한명이라도 김밥 한줄 더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시민 한명이라도 더 생중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되는거지무얼.


뭐, 김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도를 걷다가 김밥을 나눠주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니 기분이 꽤나 좋더라.
하나 먹으려다가 더 배고픈 사람들 먹어야지 하면서 냅두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제 점심 한끼 먹고 말았던 것 같다.
뭔가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끼니 안 먹는 건 여전한가보다.
속기침도 하는 걸보니, 그것도 여전한 것 같고.


가기 전에도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존경스러웠지만, 다녀온 바로 인해 더욱 존경스러워졌다.
또 리포터로 뛰면서 생중계를 하시는 분들도 정말 존경스럽고, 늘 감사하다.

독백체가 꽤 길다.
마지막으로 촛불 시위 참가해서 얻은 득템물들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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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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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시경 광화문 사거리에서 무료로 나눠주었던 한겨레 신문과 3개의 피켓들.

가끔 한겨레도 언론의 위치인 중립보다 살짝 기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좋다.
언뜻 그 때가 떠오른다.
아마 중2때였을테지?
학원에서 국어 선생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를 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다른 신문의 논조보다 한겨레 신문의 논조가 좋고, 사설 공부는 한겨레로 해야한다고 하셨더랬다.
그 영상이 뚜렷한데, 아마 그것이 한겨레 신문을 알게 된 첫번째 경험이었다.
왜?? 라는 의문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 때는 머리가 작았는지 그냥 그렇구나..라는 정도만 알고 있고, 막상 우리집은 아마 동아일보를 보던 때였을 것이다.
뭐, 지금의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꽤나 생각이 바뀌어 독자 노선을 걷고 있지만, 이 때만 해도 나의 정보원은 아버지셨고, 네트에서 정치에 관한 관심이 적었던 나는 신문과 TV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현시대를 바라보았으며 참여정부를 강렬히 비판했었다.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제성장률 따위의 진실은 알지 못한 채 말이지.

점점 머리가 커져 아주 조금씩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하지만 여전히 아집이 있는 나는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 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하나 같이 틀린 것들 뿐이었고, 나는 책상을 치며 이제껏 헛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일이 지금 우리집이 구독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논조 파악하기.
체크, 체크, 체크.

촛불 집회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괜히 쓸떼없이 반대한다고 하셨더랬지만, 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버지와 의견을 같이 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의견 마찰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씩 바뀌어 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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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관련 포스팅을 보게 되면, 여기에 덧붙이겠음.


덧붙임1)
http://tvpot.daum.net/theme/ThemeView.do?themeid=2385&clipid=8553400&lu=v_theme

: 집회 시작 전, 5시간 동안 촬영한 광화문 사거리.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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